나도 내년부턴 이러겠구나........젭라 IT

지난 6월 10일 올린"IT맨, 내가 사직서를 쓴 이유" 기사가 블로고스피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20일 현재 조회수 10만4천을 넘었고 660개의 댓글과 32개의 트랙백이 엮였다. 더 놀라운 것은 올린 지 10일이 지났음에도 기사의 조회가 꾸준하다는 것이다. 매일 천명이 넘는 사람이 이 기사를 찾아오는데, 별다른 트랙백이나 링크가 없던 19일에도 1,152회의 조회를 기록했다. 누군가도 표현했듯 이 기사가 ‘IT맨들의 성지’가 된 느낌이다.

급기야 언론사에서 이 기사를 진지하게 다루기까지 했다. 아이뉴스24의 ‘이재권’씨는 <IT개발자, '제2의 전태일' 될라> 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기사의 본문과 댓글을 소개하며 70년대 평화시장과 흡사한 IT의 노동환경이 IT의 미래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고 얘기했다. 또 그는 이 기사의 “댓글들이 교감하는 분위기”가 “매우 엄숙하고 진지하다”면서 “이 정도면, 이 글은 한 개인의 사사로운 넋두리를 넘어”서 “공적 가치를 얻고, 보편적인 공감대를 가졌다.”고 말했다.

이재권씨의 말대로 이 기사의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기사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은 댓글들이다. 내가 작성한 기사 중 600개가 넘는 댓글을 받은 기사도 없었지만 그보다 기자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댓글의 내용이었다. 댓글들은 하나 하나 사연이 구구절절했고, 야근문제에 대해 명쾌한 진단과 해결책까지 제시했다. 기사는 촉발자의 역할이었고, 진짜 성과는 바로 600개의 댓글이었다. IT맨님의 인터뷰 못지않은 그 수백개의 댓글 중에 극히 일부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IT의 미래를 걱정스럽게 하는 댓글들이 꽤 있었다. 본문에서 IT맨님이 해외취업을 고려한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답글로 해외교포분과 해외취업을 준비중이신 분들이 준 댓글이다.

저두 임베디드 개발 5년 넘었어요. 영어 배워 다른 나라로 나갈려고 맘 굳혔습니다. 프로그램 짜는건 재밌는데, 도저히 한국에서는 더 일 못하겠어요(머가좋을까)

저는 일본에서 근무하는 IT종사자 입니다. 늦게까지 하는 프로젝트도 있지만 요즘은 거의 6시반이면 나갑니다. 8시40분부터 6시30분..일도 여유있게 합니다.(하늘주신)

저도 그 생활 싫어서 작년에 일 정리하고 올해 초에 미국 이민 왔습니다. 아직 여기서 뭘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잠은 푹 잡니다.(hoon3000)

저는 지금 일본에서 C#.NET 개발자입니다. 아 한국 무섭네요. 전 첫 사회생활을 일본에서시작한 거라 한국의 혹독한 IT를 선배들을 통해 얘기로만 들었지 이 정도일 줄이야...ㅠㅠ 우리나라...아직 멀었네요...저만해도 5시30분 퇴근이지만 그래도 좀 눈치보여 6시까 있음 사수가 와서 집에 가세요~ 하거든요. 한국 돌아가기 무섭네요.(개발1년차)

저도 IT 경력 5년차인데 이번에 호주 영주권 신청했습니다.(SXXS )

일본 쪽 일 하면서 느낀 것 : 일본은 부장 또는 나이가 50세 라도 직접 개발에 참여(오류부분 귀신같이 잡아냅니다. 경륜이죠) 한국은 40넘어가면 개발 안합니다. 같은 팀이라고 해도 PM만 할려고 합니다. 일본은 오류를 방지하기 위하여 처절할 정도의 검증. 그만큼 설계,기획이 충분하다는 반증이죠. 한국은 일단 설계와 동시에 개발 시작, 중간쯤 지나 설계 오류발견하면 프로그램 엎어버립니다.(힘들다)

그래서, 저도 일본행 준비중입니다. 동생도 가있구요. 현재 프리랜서 라서 가더라도 돈 더 받는 것은 아니지만..야근하면 야근수당. 일한만큼 받고싶습니다.(aerilove)

8년전 캐나다로 이민와서 IT쪽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에서는 인건비 먼저 손대서 줄이고 줄입니다. 그러니까 님 말씀대로 5명이 할것을 1명이 하게 만드니 직원 혹사는 당연한겁니다. 캐나다에서는 일정이 빠듯하면 야근을 요구하지만 특근 수당 줍니다. 8년차 c/c++ 프로그래머면 미국,캐나다에 일자리 많아요. 9-5 일하면서 제대로 대접해줄 회사들입니다. 미련 갖지 말고 오세요.(밴나비)


IT 취업을 준비중인 취업준비생들도 걱정스런 댓글을 달았다. 듣긴 했지만 생각보다 심각하다며 과연 IT맨이 얘기하는 그런 노동강도를 견뎌낼지 걱정된다고 하였다.


저는 컴공과를 올해 2월 졸업한 학생입니다. 친구들 취업나갈때 전 나가지 않았습니다. 국비지원까지 받아 외국의 IT기술을 배워왔지만, 전 과감히 개발자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개발자에게 미래가 없습니다. 전 제가 개발자의 길을 포기한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개발포기자)

이제 막 프로그래머의 길에 발을 들인 30대 초반 남잔데 걱정이 머리위에서 뭉개뭉개 피어나네요.(걱정이네)

다음 달에 프로그래머로 취직할 예정(?)인 신입입니다. 중소기업에선 사람을 많이 구해서 맘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겠더군요. 인턴생활 해봐서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겁나는군요. 경력 좀 쌓고 다른 나라로 이민 갈 생각입니다.(RH)

저도 단지 어릴적부터 컴퓨터가 좋아서, 뭔가 해보고 싶어서 IT분야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이런 사정들은 익히 들어왔지만, 당사자의 글을 보니 가슴이 탁 막히는군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도 아예 애초부터 취업 목표를 해외기업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어 공부에도 더 비중을 두고 있구요. 생각 같아선 공부 더 열심히 해서 의대 갈껄 하는 생각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더라구요.(Oranzie)

안타깝습니다. IT 관련 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인데, 정말 현실이 그 정도면 대안은 없는 건가요??벌써 꿈이 막히는 거 같아 답답합니다.(에레보스)

컴퓨터 공학과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으로서 여러분들의 경험담이라던지 이런 글을 보고 조금씩 두려워집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잘하고 있는건 지 여러분들의 경험담보면 정말 말 그대로 무섭기만 하네요. 좀 더 생각해보고 다른 길로 옮겨야 할 듯 이런 생각이 드네요. 아 무섭다. 이 길 좋아서 시작한 거 였는데. 어쩌지 갑자기 앞일 걱정.(Languidness)

컴퓨터 공학 전공 학생이라고. 이런 글. 날 비참하게 한다고. 어흐흑.(김건우)


이제 더 이상 IT 분야의 일을 하지 않아 속이 후련하다는 전직자들의 댓글도 있었다.
 

약간 다른쪽이지만 비슷한 개발자로써 공감 그래서 몇년전 퇴사했고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고 아마 계속 그 일을 했다면 연봉 4000정도 받고 있겠지만 지금은 평사원에 연봉은 3000정도입니다. 평소 8시30분 출근 오후 6시30분 퇴근 주말에 여러가지 일들을 하고 사회에 나름대로 봉사도 하고 그렇게 삽니다. 나만을 위해 살고싶지는 않네요. 음.. 한가지 아쉬운건 아직도 그일이 너무 재미 있었다는거.. 그래서 취미로라도 해볼까 라는 생각을 한다는 거 ㅎㅎ 어쨌든 얻는게 있슴 잃는 것도 있는 것이겠죠.(che)

너무 와닿아서 그냥 못가겠네요. 저도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회사 그만두면 걱정이 앞설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후련합니다. 밤 12시에 퇴근하면서 '죄송합니다.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라고 말하던 때가 얼마 안되었지만 지금생각해도 너무 끔직합니다.(또치)


이와같은 심각한 IT 노동환경에 대해 원청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었다.


씨부랄 나도 어제(일요일에서 월요일) 새벽 3시까지 일했는데. 근데 씨부랄 갑들이 9시까지 다시 와달란다. 강북에서 분당 지하철로 갈려면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리는데 그럼 난 몇시간 자고 일하라는거야(씨티헌터)  

거대 SI때문이다, 100원짜리 프로젝트가 두세단계를 거쳐 개발회사에는 50이하로 개발된다, 문제는 시간도 그만큼 짤려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일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Rhova)

일전에 한 프로젝트는 클라이언트와 매주 회의를 했는데 매주 요구사항이 뒤집어 집니다. 회의록을 아무리 작성해도 막무가내더군요. 그래서 매주 새로 개발합니다. 개발비를 100만원을 준다고 하면 요구사항은 5천만원짜리를 요구합니다. 개발기간 내내 신입 한명이랑 새벽 2~3시 퇴근은 기본이로 일주일에 한번은 꼭 밤을 새게 되더군요. 지금 개발하는 프로젝트도 요구 분석 할 시간도 없이 우선 화면부터 한 달 안에 만들라더니 지금 와서는 왜 이렇게 만들었냐며 다 엎어버리네요. 그러면 결국 개발 시간만 더 길어집니다. IT 강국 정말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지요. 한번 노동부에서 강도 높게 조사해서 이 바닥 한번 확 뒤집어야 합니다.(뻥돌이)

옛날 생각나네요. 어떻게 그렇게 지냈는지. 전 개발 7년간의 시간을 지웠습니다. 지금 system dba로 일주일에 30시간정도 일하면서 집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지옥을 빠져나온 보상이라고 할까. 36 세에 올해 장가도 갑니다. 대기업이 만들어놓은 IT문화에 참 치가 떨리는군요. 전 후배가 그쪽으로 갈려고 하면 말깁니다.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더럽고 추악한 곳이라고.(휴...)


이 와중에 기사를 적절히 활용하는 분들도 계셨다.


개발자 모집:저희는 POS업체입니다..우리 회사는 적어도 쉬는 날하고 퇴근시간은 잘 지켜지는 편입니다. 전달 만근시 월차도 있구요..혹   POS프로그램 개발 경헙 있는 분중 같이 일할 맘이 있는분은 연락부탁합니다.(마스타 개발자)chul0059@hanmil.net

(주)제일저축은행에서 10년 이상의 개발 경력자를 모집합니다. 오라클, 델파이, C,unix 유경험자를 6월말까지 모집합니다. 자세한 문의는 hrha@jeilbank.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IT분야 종사자를 둔 가족들도 ‘한숨 쉬는’ 댓글들을 달았다. 신랑의 발을 씻겨 주겠다는 부인도 있었고, 심지어 사표 쓰는 거 말리지 않겠다는 분도 계셨다. 또 IT 종사자의 입장에서 동료와 자신의 가족을 바라본 참담한 심정을 적으신 분도 있었다.


저도 윗분과 같은 일을하는 신랑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남편이 아니라 남이라고 생각하고 삽니다.(꼬꼬댁)

제 동생도 게임회사에서 일합니다.  그런데 평균 퇴근시간 11시~새벽1시더군요. 그래도 다음날은 역시 정상출근. 이 녀석 첨에 몇달은 뭐 배울것도 많고 잼있다고 하더니만 이제는 지친다고 합니다. 한달에 쉬어봤자 이틀정도? 한국은 절대 선진국 못됩니다.(바슈)

한번은 남친 회사앞에서 새벽 3시까지 기다려본 적 있습니다. 혼자 겜방에서. 그렇게 기다렸지만, 얼굴 보구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더군요. 이런 사람이랑 내가 결혼이나 할수 있을까 싶어지고. 올 9월 또 하나의 계약이 끝나는데, 입사 5년차 미혼인 지금 그만두고 가게를 차려본다 합니다. 그래두 남의 월급 받고 사는 게 속 편하다고 하는데. 남친 힘들어하는 거 보면, 회사 그만두지 말란 얘기도 못하겠어요.. 통화할 때 가끔 지나치는 말로 한강시민공원에서 노을보며 데이트 한번 해보는게 소원이라구 했더니,그말이 가슴에 꽂혔나봅니다. 그거 얼마 후면 우리도 한다고.(swiss)

그의 와이프로서 공감합니다. 울 신랑 참 불쌍하게 일하네요,,눈물이 납니다. 프젝 맞고서 거의 한달동안 집에 온적이 없어, 어떤 여자와 놀길래 맨날 밤셈이야~라고 농담을 건네지만 속으론 참 맘이 아픕니다. 집에 오면 초죽음이 되어 쓰러지는 모습이 눈물 겹습니다. 오늘 울 남편이 집에 올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며칠만 더 참으면 된다고 말하는 울 착한 신랑님 발 좀 씻어줘야할 거같네요.(김혜진)

울 신랑도 개발하는 사람인데 야근이 너무많아요. 정말 이정도 현실인지는 몰랐어요. 저두 사표 쓴다면 반대할 생각은 없어요. 같이 다른 거 하면 못 먹고 살겠습니까.(눈물나네요)

울남푠이 생각나요..벌써 3개월째 집에 일주일에 두번만 들어옵니다 울남편이 너무 안됐어요 하다가 안되면 일본으로 가자고 하는데 울나라 이쪽 계열에 몇 년 전에 노동조합비슷한 거 생겼다가 만든 사람들 다 실직됐다고 하죠.(김은경)

동감 100% ㅠㅠ  결혼초에 마눌한테 왜 결혼했냐는 소리까지 들었네요 매일 저녁 12시, 1시 일찍 들어가는 날이 10시였으니깐요.(사발우성)

여관 잡아 놓고 주말 없이 새벽 4시 퇴근. 그리고 정시 출근. 다닥다닥 붙어서 개발 하면 새벽에 집에들 전화가 오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들리죠. 신혼인데 왜 이런 사람하고 결혼해서 이러냐고 우는 사람이 있고, 그러면 한사람씩 담배 피로 가죠. 그리고 애들 한테 전화 와서 아빠 언제와? 그러죠. 그리고 어떤 와이프한테는 막 화내는 소리를 하고 전화를 끊고. 그러면 죽고 싶죠. 정말 힘든 건 애들이 전화 해서 거의 울다 시피 하면서 아빠 보고 싶어. 언제와? 이러면 정말 일할 맛 안납니다.(개발자)


가장 심각한 것은 건강에 관한 댓글이었다.


제 동생이 그런 일을 합니다. 야근, 철야 작업때문에 몸이 망신창이가 되어 젊은 나이인데도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goodman) 

끊이지않는 철야와 스트레스로 반 병신이 되어 그만둔 뒤 일년 가까이 일을 못하고 있습니다...ㅠㅠ(포기...)

주변에 아는 분 30살의 나이로 하루아침에 쓰러지고 바로 반신불수되더군요. 지능이 1~2살수준이래나 그러는거 보고나서 정말 인생 허무하구나라고 생각하고 나서 개발쪽 이길 접었습니다. 연봉 1천을 받아도 업무환경 좋은쪽으로 가는게 좋습니다.(oracler)

결혼3개월 29세때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좀 나중에 의사가 권해서 직업바꾼 사람입니다. 38살,40살에 간암, 위암걸려 처자식 어쩌냐고 눈물 떨구는 선배들 앞에서 소주잔만 기울였습니다. 지금의 전 제 가족들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을 따름이고 오늘 이글을 보면서 개발 그만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새기고 갑니다.(고기먹는팬더)

90년도 중후반에 꿈에도 그리던 IT쪽에 약 20개월정도 몸담았다가 나왔었습니다. 입사시 62Kg정도 되던 균형잡힌 몸매가 새벽4시까지 일한 덕에 48kg까지 줄어들고 얼굴에 황달끼(?)까지 생겨었었죠. 지금도 계속했었으면 어찌됐을까 가끔 생각합니다.(리브팜)

한때 si에 몸담았던 기억이 있네요. 빨리해도 8달이상 걸릴 몇 십억하는 프로젝트를 4달에 끝내라는 명령. 하다 하다 탈모증세도 생기고 건강도 나빠져서 회사를 그만두려고 사직서를 제출했더니. 가족같아 좋았다고 하는데 지 자식 맨날 야근시키고 부려먹지 않을 거 눈에 훤히 보이더군요. 퇴직금도 8달이 지나 받고.(해피바이러수)


특히 아기 안을 힘도 없다는 심각한 상황을 호소하는 이 분의 댓글은 한동안 스크롤을 멈추게 만들었다.

 IT분야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따로 소개하고 싶을만큼 의미 있는 고찰을 보여주신 분도 있었다.


야근도 문제지만 더더욱 문제는, 관리력 제로인 관리자들입니다. 맨파워를 알고 있어야 하고 팀의 능력을 알고 있어야 하고 프로젝트의 개발 일정에 대해 예상하고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규모가 크던 작던 아마추어 습작 만들듯이 일 저지르고 봅니다. 꼭 중요한거고 회사의 사활이 걸렸으며, 영업에서는 기대하고 있는 등 말도 안되는 일정안에 납품하겠다 해놓고 일 시작하랍니다. 짜여진 지획도 진행중에 바뀌는법인데, 그런 기획 하나 없습니다. 그냥 시작하죠. 전에 꺼 참고하면 되자나. 이러니 매번 문제가 생겨서 그거 고치는 일의 반복이고 그러니 야근을 밥먹 듯 하고, 개개인은 일에 지치니 생산적인 생각, 아이디어가 나올 리 없습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지만 IT일이라는 게 쉽게 풀릴 수도 어렵게 돌아 갈수도 있는 일인데, 항상 어렵게만 돌아갈 뿐이죠.

이런 식이니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올리 없으며 매번 외국, 특히 미국애들이 만들어 놓은 거 구현해주고 따라 만들기 급급합니다. 맨날 꼬랑지만 잡고 따라 다니는거죠. 절대로, 발전 못합니다. 수익이 늘고 어쩌고의 수치가 중요한게 아니라 미래를 대비 해야 하는데 절대 이상태로는 개개인도 회사도 나라도 가망 없어요. 왜 나이든 숙련된 인력 쓰는것보다 싼 젊은 인력 쓰는게 좋은지 알아요? 일 자체가 숙련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죠. 어차피 핵심은 다 사오는거고 껍데기만 이리 저리 바꾸는짓만 하니까요.(불사새)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 에서 박승 전한은총재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은 개인재 생산은 일등이다. 쌀, 옷 생산하는 산업성장은 잘한다. 쌀과 옷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다. 한국의 선진국 결정요인은 사회공공서비스인데,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해결된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구조면에서 한국은 후진단계다. 물질의 압축은 가능하지만 정신의 압축은 불가능하다. 하루아침에 떼부자는 되지만, 사회적인 공동체의식은 하루아침에 안 된다.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일인당 소득 3만불, 5만불 갈 수 있으나 미국과 유럽과 같은 삶의 질 유지는 대단히 어렵다.>


아무리 생산을 많이 한다고 해도 한국인의 이 열악한 노동환경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5만불이 넘으면 그땐 또 다른 논리로 현재의 만연한 야근문화에 대한 변론이 이어질 것이다. 개도국에 추격당한다니, 국민소득에 거품이 있니 하면서 말이다.


생산이 모자라서 한국인이 이렇게 야근을 죽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된 것들을 분배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야근의 이유다. 이 사회가 분배의 근거로 생산물에 대한 효율적인 기여가 아닌 야근을 근거로 요구하기 때문에 한국사회가 야근공화국이 된 것이다.


한국사회가 분배의 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은 박승총재 말대로 한국사회가 떼부자가 되었지만 사회적인 공동체 의식은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생산의 개선이 아닌 의식의 개선이 있어야 한다. 야근하는 것보다 야근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IT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야근임금을 소송을 통해서 받아내고 있다는 기사를 소개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소송을 기대해본다.


출처 :  http://www.lawyersandsettlements.com/case/it_overtime.html

 

정보통신,전산 종사자의 초과근무 임금 지불에 대하여

 

it 업계와 전산관계 업종의 근무자는 초과 근무시간에 대한 임금지불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연방법과 대부분의 주에서는 근로자가 연방법이나 주법에서 제한적인 하나의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 한 주 40시간을 초과한 근무에 대하여 근로자에게 초과 근무부분 임금을 지불할 것을 당연시 한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초과근무 임금은 근로자가 주 40시간이상 또는 하루에 8시간 이상의 근무를 할 경우를 이에 해당한다.

 

수년간 가주의 고용주들-휴렛패커드,인텔,에플,시게이트,선마이크로,콴텀,어플라이드,시스코,실리콘그래픽스,내셔날세미콘닥터,쓰리콤과 베이네트워크등-은 it업종과 전산전문가들--컴터프로그래머,컴터시스템분석자,프로그램분석자,어프리케이션분석자,소프트웨어기술자,시스템기술자,시스템스페셜리스트등과 비슷한 종류의 직종--에 대한 초과근무분의 임금지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it업종이나 컴터업계에서 이 분야의 종사자들에게 수시로 주어진 작업의 양이나 초과근무에 대해 고용자들은 이들 종사자들에게 "초과근무지급예외'라는 잘못 적용된 규정이 거부당함으로써 많은 업계 종사자들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게 되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제조업체,인터넷,게임개발 회사등과 기타 다른 it종사자나 컴터 기술자들을 고용한 기술산업의 대기업들은 미지급된 임금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전,현직 근로자들에게 수많은 돈을 지불했다.

 

ibm 과 다른 회사들도 수천의 it와 컴터 종사자들을 대리한 집단 소송을 당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고용주들이 법에 규정된 초과근무에 대한 임금지불을 안하고 있어 또 다른 소송들에 직면해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컴터 종사자에 대한 노동법 규정

 

 가주의 노동법은 컴터 종사자들이 초과근무에 대한 임금을 못받는 것에 대한 보호규정이 있다


 가주의 노동법 조항 515.5항 또는 sb88조항은 컴터업계 종사자들이 이런 몇몇의 요건을 갖추면 초과근무 부분에 대한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시하였다

 

 초과근무에 대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한 규정은 임금기준인데-업계 종사자의 시급이 $47.81을 넘거나 또는 년봉 기준으로 그 시급 지급액과 같은 액수 이상일 경우이다. 만약 가주의 컴터 종사자가 시급 $47.81 도는 같은 기준의 년봉 $99,445를 넘지 못한다면 스 근로자는 초과근무 임금지급 규정에 해당한다. 다른 주들도 컴터업계 종사자들에게 예외규정과 기준 지급액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비슷한 법율조항들이 있다

 

Employees in the IT and computer software industry may be entitled to overtime pay...

Federal law and the law in most states requires overtime pay for employees who work more than 40 hours per week unless the employee fits within one of the limited exemptions available under federal or state law. In California, the overtime requirement applies where the employee works more than eight hours in a day or more than 40 hours in a workweek.

For years, employers in California such as Hewlett-Packard Company, Intel Corporation, Apple Computer Inc., Seagate Technology, Inc., Sun Microsystems, Inc., Quantum Corporation, Oracle Corporation, Applied Materials, Inc., Cisco Systems, Inc., Silicon Graphics, Inc., National Semiconductor Corporation, 3Com Corporation and Bay Networks, Inc., have allegedly denied overtime wages to IT and computer professionals (computer programmers, computer system analysts, computer programmer analysts, application analysts, software engineer, system engineer, systems specialist, and others holding similar job titles) based on the mistaken impression that these individuals are exempt from the overtime requirements.

Given the job demands on those working in the IT and computer fields and the number of hours these people often work, employers' misclassification of these employees as exempt from overtime has denied many employees substantial amounts of overtime wages owed to them. Some of the biggest names in the technology industry ?including hardware and software manufacturers, internet companies, and gaming manufacturers ?and other businesses that employ IT and computer professionals have paid out millions of dollars to current and former employees who filed claims seeking recovery of these wages. IBM and other companies have recently been sued in class action lawsuits filed on behalf of thousands of IT and computer professionals. Yet many employers still fail to pay overtime as required by law, and they face additional lawsuits.

California State Labor Law for Computer Professionals
California State Labor Laws protect computer employees from unpaid overtime. California Labor Code 515.5 or SB 88 states that employees in the computer software field may be exempt from overtime pay if they meet several requirements. One exempt-status requirement involves pay rate: "The employee's hourly rate of pay is not less than forty-seven dollars and eighty-one cents ($47.81), or the annualized full-time salary equivalent of that rate.?

If a California computer software employee earns less than $47.81 per hour or the annual salary equivalent of approximately $99,445, they may qualify for overtime pay.

Other states have similar laws for computer professionals, though the exempt-requirements and pay rates may differ.

by zoka6864 | 2008/09/20 12:32 | 트랙백 | 덧글(0)

잡스 횽아 -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문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 이것은 2005년 6월 12일에 애플컴퓨터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EO인 스티븐 잡스의 졸업식 연설문입니다. )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저는 오늘 전세계에서 최고 대학 중 하나인 스텐포드 대학 졸업식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진실을 말하면, 이번이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온 것입니다. 오늘 저는 제 삶에서 3가지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번째 얘기는 점들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저는 리드 컬리지를 첫 6개월동안 다닌 후 자퇴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자퇴하기 전에 그 후 18개월동안 청강생으로 주위에 머물렀습니다. 왜 제가 자퇴를 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제가 태어나기 전 내 어머니(생모)는 젊고, 결혼도 하지 않은 대학 졸업생이어서 저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대학 졸업자에 의해 양자삼아주기 강하게 원하셨고, 태어나면 변호사와 그의 부인에게 입양되도록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내가 출생했을 때 그들이 여아를 정말 원한다는 결정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순진하게 스텐포드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계층인 부모님의 모든 돈이 내 대학 등록금으로 소진되었습니다. 6개월 후 저는 대학에서 가치를 발견치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뭘하고 싶은지, 어떻게 대학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학에서 내 부모님이 전 생애를 통해 벌었던 모든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퇴를 결심했고, 모두 잘 될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 순간은 무척 두려웠었지만, 뒤돌아보면 그것은 내가 한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그 순간 저는 관심 없었던 필수 과정들을 이수하지 않을 수 있었고, 관심 있어 보이는 과정들을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모두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숙사도 없었고, 친구 집의 바닥에서 잠을 잤고, 먹을 음식을 사기위해 콜라병을 모아 5센트씩 모았고, 매주일 밤에 일주일에 한번 훌륭한(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헤어 크리쉬나 사원까지 기꺼이 7마일을 걷곤했습니다. 그 일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호기심과 직관을 따름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든 많은 것들이 후에는 가치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그 당시에 리드 대학은 우리나라에서 (아마도) 최고의 서법강좌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전 캠퍼스의 모든 포스터, 모든 서랍의 라벨은 아름답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제가 자퇴하고 정규과정을 수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법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기 위해서 서법 강좌를 수강하기로 결정했고, 저는 serif[(M, H등의 글자에서상하의획에 붙인) 가는장식선, 세리프와 san serif 서체를 배웠습니다. 즉 다른 글자 조합간의 총 공간을 변경하는 것에 관해, 무엇이 서체를 멋지게 만드는 가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것은 과학이 따라잡을 수 없는 아름답고, 역사적이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저는 그것에서 매력을 발견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러한 어떤 것도 내 삶에서 실제적인 적용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처음 메킨토시 컴퓨터를 처음 디자인할 때, 그것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맥에 모든 것을 디자인해 넣었습니다. 맥은 아름다운 활자(typography)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대학에서 그 과정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맥은 결코 다양한 서체와 균형 잡힌 자간을 띄운 글자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윈도가 맥을 모방했기 때문에, 개인용 PC가 글자체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제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저는 결코 이러한 서체 강좌를 수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들은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내가 대학에 있을 때에는 점들을 앞쪽을 보면서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렇지만 10년이 지난 후 뒤쪽을 돌아보니 아주 아주 명료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점들을 앞쪽을 보면서 연결할 수 없습니다. ; 점들을 뒤쪽을 보면서만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점들이 어느 정도 당신의 미래에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신뢰해야 합니다. 즉 실질, 운명, 삶, 카르마(인연, 숙명) 그 무엇이든. 이런 접근법은 결코 저를 낙담시키지 못했고, 내 삶의 모든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 얘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저는 제가 즐겨할 수 있는 일을 빨리 발견했습니다. Woz와 저는 20세에 아버지의 차고에서 APPLE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만에 애플은 차고의 2명에서 4000명의 직원을 가진 20억불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최상의 창조물 -매킨토시-을 1년 더 빨리(29세에)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당신이 만든 회사에서 어떻게 해고될 수 있냐구요? 글쎄요, 애플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저와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는 매우 재능있는 누군가를 고용했고 첫해 일은 잘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우리의 비젼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나이 30세 해고를 당했습니다. 아주 공식적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죠. 내 전 젊음을 집중했던 것은 사라졌고, 파괴되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저는 수개월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전 세대 사업가들을 낙담시킨 것처럼 즉 내게 전달된 바톤을 떨어뜨린 것처럼 느꼈습니다. 저는 데이빗, 패커드과 밥 로이스를 만나서 일을 그르치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공적으로 실패했고 심지어 벨리(실리콘?)에서 도망칠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제게 새벽이 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한 것을 사랑했습니다. 애플에서의 일련의 사건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저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애플에서 쫓겨난 것은 저에게 있어 가장 최선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공에 대한 중압감이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가벼움으로 바뀌었고, 모든 것에 대해 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저를 제 삶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간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했습니다. )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다음 5년 동안, 저는 NeXT라는 회사와, Pixar라는 또 다른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부인이 된 굉장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Pixar는 세게 최초 Computer animated feature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창조해냈고,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니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주목할만한 일련의 변화로 애플은 NeXT사를 샀고, 저는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NeXT에서 개발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에 핵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스와 저는 멋진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만약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꺼라고 확신합니다. 지독하게 쓴 약이었지만 저는 환자에게 그런 약이 필요한 것임을 압니다. 때때로 삶이 당신의 머리를 벽돌로 치게 됩니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는 저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유일한 것이 제가 한 것을 사랑하는 것임을 확신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으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일에도 진실하십시오. 여러분의 일이 삶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믿는 일을 하는 것이 위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계속해서 찾으십시오. 안주하지 마세요. 마음의 문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발견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위대한 관계처럼, 세월이 흐르면 점점 좋아지게 됩니다. 찾을 때까지 계속 찾으시고 안주하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제가 17세였을 때 “매일 매일을 당신의 마지막 날처럼 사세요, 그러면 언젠가는 당신은 가장 확실하게 내가 옳았어”와 같은 인용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인상적이었고, 그 이후로 지난 33년동안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것을 하길 원하는가?”라고 자문합니다. 그리고 연속으로 많은 날 동안 “아니오”라고 대답하게 될 때, 저는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압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곧 죽게 될꺼라는 것을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즉 제가 삶에서 큰(중요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 우연하게 마주친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 - 외부적인 기대들, 자신감, 창피함 또는 실패의 두려움- 이런 것들은 죽음의 면전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곧 죽게 될꺼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여러분이 뭔가를 잃게 될꺼라는 생각의 덫을 피하게 하는 제가 아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벗었고, 마음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1년전쯤,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오전 7:30에 정밀조사를 받았고, 분명하게 췌장에 종양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심지어 췌장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제게 이것은 치료할 수 없는 형태의 암이라는 것을 말해줬고, 저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살 수 있음을 기대해야 했습니다. 제 의사는 집에 돌아가서 일들을 정리하라고 조언했고, 그것이 의사의 죽음에 대한 준비절차였습니다. “그렇게하는 것은 단지 수개월내에 제가 앞으로 10년동안 자녀들에게 하려고 했던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아래에서 위까지)해서 가족에게 가능한 쉬운 것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그런 진단을 받고 하루종일 보냈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검사를 했습니다. 즉 목으로 들어가서 위를 통해서 창자속으로 들어가는 내시경을 했습니다. 제 췌장에 바늘을 넣어서 종양으로부터 세포 몇개를 취했습니다. 저는 차분했지만 함께 있던 아내는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검사하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아주 특이한 형태의 췌장암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현재 건강합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이것이 제가 죽음에 직면했던 가장 가까운 것이었고, 이것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가장 가까웠던 것이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통해서, 저는 현재 여러분께 죽음은 유용한 것이지만, 순수하게 지적 개념이었을 때보다 좀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심지어 천국을 가길 원하는 사람조차도 죽어서 그곳에 도달하길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할 최종 목적지입니다. 누구도 비켜갈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의 유일한 최고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대리인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들을 위해 길을 만들기 위해 오래된 것들을 치우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새로운 것은 여러분입니다. 그렇지만 현재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날 여러분은 점차 오래된 것이 되어 치워지게 될 것입니다. 너무 극적인 것 같아 미안하지만 완전한 사실입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사람의 삶을 사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결과로 살아가는 독단에 빠지지 마세요. 내면의 소리를 소멸시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허락하지 마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세요. 여러분은 이미 어느 정도 여러분이 진정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제가 어렸을 대 “The Whole Earth Catalog"라고 불리던 놀라운 출판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세대에 바이블과 같았습니다. 그 출판물은 여기서 멀지 않은 Menlo park의 Stewart Brand라는 분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그의 시적인 솜씨를 더해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때는 개인용 컴퓨터와 데스크탑으로 출판되기 이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출판물은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모두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종이 형태로 만들어진, 구글이 사용되기 35년 전의 종이형태의 구글이었습니다. 이상적이었고 간결한 도구와 위대한 개념들이 흘러넘쳤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스튜터트와 그의 팀은 “The Whole Earth Catalog"를 수차례 발행했고, 그 과정을 개설하면서 최종본을 발행했습니다. 그 때가 1970년대 중반이었고 저는 여러분의 나이였습니다. 그 최종본의 뒤쪽 커버에는 이른아침 시골 길 사진이 있었고, 만약 당신이 모험심이 강했더라면, 히치하이킹하는 당신 자신을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그림 아래에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머물라“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발행을 마치면서한 고별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내 스스로를 그렇게 되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현재 졸업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여러분이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머물라. 고맙습니다.)

by zoka6864 | 2008/09/20 12:26 | 트랙백 | 덧글(0)

Eureka 147 (계속)

 

0 데이터 서비스
Eureka-147
데이터 서비스는 크게 Stream Mode Packet Mode 나뉜다. Eureka-147 CD수준의 음질로 여러 채널의 오디오를 전송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며 정지영상, 동영상, 그래픽 등의 전송도 가능하고 Paging(무선호출), EWS(국가재난방송), IP Datagram Tunneling 기법을 이용하여 1:1(Ponit) 또는 1:(Multi) 같은 통신 서비스도 제공할 능력을 갖춘 멀티미디어 방송이다.

Eureka-147
에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서 멀티미디어 오브젝트 전송(MOT: Multimedia Object Transfer) 프로토콜을  표준이 제정되었다. MOT 문자, 음성, 사진, 정지영상, 동영상 콘텐츠와 콘텐츠의 표현을 제어하고 분류하는 정보를 합한 것을 의미하며, Eureka-147 전송 매커니즘을 이용하여 멀티미디어 오브젝트를 전송하는 것을 지원하는 프로토콜이다


1) PAD(Program Associated Data) 프로그램 연동정보->Stream Mode
오디오서비스에 추가하여 음악의 곡명, 작곡자/가수/연주자 이름, 노래가사, 콘서트 일정 등이나 CD 제목, CD 표지 화면, 연주자 사진, 문자, 정지영상 그래픽 결합하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트율을 절약하기위해 오디오를 MUSICAM 대신 BSAC 사용 경우 PAD 사용 없게 된다.

2) Non-PAD (프로그램과 무관한 독립정보 서비스)->Packet Mode
- BWS(Broadcasting Web Site : 웹사이트 방송) : 웹사이트 전체를 캐로우절 방식을 이용해 전송한 DMB 채널을 이용하여 다운로드 다음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 EPG(Electronic Program guide
전자 프로그램 가이드) : 신문에서 프로그램 안내를 보는 거와 마찬가지로 다중화 시킨 서비스를 수신기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볼수 있게 해준다
.

- Interactive Service (
양방향 서비스
)
양방향 멀티미디어 서비스에 요구되는 리턴 채널을 통해서 이동통신채널을 사용해야 하므로 DMB 통신방식을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KT에서 2006년경 위성DMB 서비스를 통하여 휴대인터넷(2.3GHz) 연계하여 양방향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광고(Ads) 쇼핑, E-mail, 게임, 원격강의 등의 서비스가 데이터 서비스 채널을 이용하여 제공할 있다
.

3) 동영상 전송
-  MOT(Multimedia Object Transfer) Protocol : MOT 독립된 형태의 Eureka-147 수신기에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적합한 프로토콜이다.  DMB 서비스로 효용가치가 없어진 프로토콜이다.

 

- 데이터 서비스에서 제공할 있는 동영상의 유형은 MOT 이외에 UDP/IP(User Datagram Protocol/Internet Protocol) 이용한 IP Datagram Tunneling(Packet Mode) DMB(Digtal Multimedia Broadcasting : Stream Mode) 2 가지로 분류할 있다.


- 동영상을 포함하는 IP Datagram Tunneling Protocol Protocol 표준을 충족하는 DAB-IP 게이트웨이(Web Server) 장비에서 UDP/IP(User Datagram Protocol/Internet Protocol) 프로토콜의 데이터를 DAB 데이터 그룹으로 변환하여 방송된다. 수신기에는 사설IP 또는 공인IP 지원해야 하고 멀티플렉스 사업자는 Web Server 이용하여 Network Layer Transport Layer 서브넷마스킹을 다음  1:1(Unicasting or pointcasting 점송) 또는 1:(Multicasting or narrowcasting 협송) 1:ALL (Broadcasting 방송)서비스가 가능하다. B그룹은 65천명, C그룹은 254명까지 전달가능하다. A그룹는 2(24)-2 16백명이상 가능하다. 이기능을 이용하면 개인 또는 각각의 그룹에게 Paging(무선호출) 가능하다. 유럽에서는 L-band 에서 반경 24Km MEMO(Multimedia Environment for Mobile) 연계하여 Local(권역별) 방송으로 전송 가능하나 우리나라는 VHF-band 사용하므로 반경 96Km 에서의 단일망 방송으로는 구현하기가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 DMB 비디오 전송시 1.027 Mbps 전송용량을가지므로 MPEG-4 AVC 압축방법을 사용하는 경우 비디오 VCD(384Kbps), 오디오 CD((96Kbps) 준하는 동영상을 2 보낼 있다. DMB DMB전용 수신기를 통하여 있다. 동영상의 압축에는 MPEG-4 AVC/H.264, 오디오 압축은 BSAC 사용하며 데이터동기를 위해서 BIFS 사용한다.


 


이어지는 내용

by zoka6864 | 2008/07/18 17:36 | T-DMB | 트랙백 | 덧글(0)

Eureka 147 (계속)

0 인터리빙(Interleaving)

인터리빙은 전송하려는 데이터의 에러를 줄이기 위해 행과 렬의 순서를 바꾸어 보냄으로써 정보가 손실될 경우에도 복구 가능한 데이터로 만들어 준다. Eureka-147 인터리빙을 위해 시간인터리빙과 주파수 인터리빙 모두 사용한다. 시간 인터리빙은 MSC 위해 수행되고 FIC에는 수행되지 않는다. 시간 인터리빙는 384ms 전송지연을 갖는다. 주파수 인터리빙은 1.536MHz 대역전체에 걸쳐 무작위로 FIC MSC 대해 수행된다. 크기는 221,184 bit/96ms=2.304Mbps이다. Service Provider에서 데이터가 입력되며 1/2 코딩으로 오디오일 경우 1152Kbps 데이터를 보낼수 있고 비디오일 경우 Reed-Solomon Code 더해지고 Convolution Interleaving 가한다.  비디오인 경우 실제 데이터는 1027Kbps정도 전송된다.

 

0 오류정정코드 (Convolutional Code)

Eureka-147 대역폭 1.536MHz 데이터율 2.4Mbps=[(FIC-3+MSC-72) 75symbol* 2*1536bit /96ms] 사용한다. 이동체 수신에는 다중경로 페이딩 도플러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 COFDM 전송방식을 사용한다. 변조방식은 π/4-DQPSK 사용하며 오류정정 부호화 방식으로는 부호율 입력k=1 출력n=4 구속장K=7(메모리 6 +1) 가변율(Variable Rate) 적용되는 길쌈부호(Convolutional Code) 기반으로 RCPC(Rate Compatible Punctured Convolutional) Code 사용하고, 또한 오디오 데이터의 군집오류를 방지하기위해 인터리빙 기술을 사용한다. 기본 오디오서비스 MPEG-1 Levle2 경우 데이터의 중요도에 따라 EEP(Equal Error Protection ) UEP(Unequal Error Protection) 나누어 사용한다.

 

오디오서비스인 경우 컨벌루션코드는 입력k=1 출력n=4 구속장K=7 가변율(Variable Rate) 적용된다. 결과적으로 가장 성능이 우수한 보호수준1(Protection Level 1) 경우 유효율 R=1/3 경우 0.8(32Kbit*24Channel= 0.768)Mbps, 보호수준이 가장낮은 보호수준5 경우 유효율 R=3/4  1.8(32Kbps* 54Channel = 1.728)Mbps 가진다. Level 1~5 5종류이고 24단계(8/32 ~ 8/9) 보호율이 적용된다.

 

평균 보호수준 Level 3 R=1/2 경우 MSC 데이터 비트율 2.304Mbps 1/2 1.152Mbps 전송 비트율를 가진다. 유럽에서는 음악방송등의 고음질 서비스에서는 데이터율 192Kbps R=1/2 설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경우 6개의 채널(1.152Mbps) 방송할 있다. 경우 BER(Bit Error Rate) 10(-4) 만족한다(오디오 서비스 경우).

 

*부호율(Code Rate) : 조직부호에서 1블록 중의 정보점의 k(입력) 블록의 길이 n(출력)과의 k/n.

*구속장(Constraint Lenth) : 하나의 정보비트에 의해 변화 있는 출력 시퀀스  비트의

K=m(메모리=6)+1 =7 구성

 

 

0 추가채널 오류정정부호 = [Reed-Solomon(204,188, t=8)]
기존 오디오 오류정정부호는 BER 10(-4) 만족해야 하나 비디오인 경우 최소 10(-8) 이하의 BER 요구된다. 기존 오디오 Convolution Code 송신기단(NP)에서 적용되어 내부호라고 하나 서비스단(SP) 비디오 다중화단에서 188 Byte 16 Byte 리던던시를 추가하여 오류정정을 높였으며 외부호라고 부른다. 오류정정능력 t = 8 byte 이다. Reed-Solomom Code 적용시 10(-8)이상을 만족해야 하며 경우 유효비트율은 1152Kbps*182/204=1.027Mbps 예상)  결국 비쥬얼 384Kbps 오디오96Kbps 더하면 비디오 2(960Kbps)  오디오 1(67Kbps ) 방송할 있다.

 

 

0 기본 오디오 서비스 규격 = [MPEG-1 Layer2  MUSICAM]  
 

오디오신호의 가청 주파수 대역폭은 20Hz에서 20KHz 이다.  샘플링 주파수는 48KHz 해상도는 16bit 하고 프레임 길이는 24ms 이다. 오디오 신호를 750Hz 대역폭으로 32개의 서브밴드로 구성된다. MP2 경우 심리음향 특성을 이용하여 1536Kbps Joint Stereo 192Kbp 8:1 손실압축한다. 방송용 음질을 MPEG-1 Level 3 mp3 데이터 비트율로 비교해 보면 8Kbps(음성 비압축=64Kbps) 16kbps(AM Mono), 32kbps(AM Stereo), 32Kbps(FM Mono), 64kbps (FM Stereo), 128kbps(Joint Stereo CD) 160Kbps(Stereo CD, 비압축=48Kbps*16bit*2=1.536Mbps )정도이다.

mp2에서는 192Kbps(Joint Streo)에서 CD 음질을, 256Kbps에서 CD 음질을 보장한다.

멀티미디어 방송을 하기 전까지 오디오 부분(DAB) MPEG1 Layer2 MUSICAM 방식의 192Kbps, 48kHz 샘플링방식으로 전송되고 이후 동영상 방송인 DMB부터는 멀티플렉스 사업자가 MP2 할지 BSAC으로 할지 자유로이 선택할 있다.

 

0 오디오 방송 = [MPEG-4 Part3 Audio ER-BSAC]

지상파 DMB 오디오 규격는 MPEG4 Part 3 [BSAC] 이다. BSAC 삼성전자, AT&T, Dolby등에서 2001년에 국제표준 규격으로 제정된 기술규격이다. 이중 [에러에 강인한 비트조각 산술코딩] ER-BSAC(Error Resilient Bit Sliced Arithmetic Coding) 96kbps 뮤지캄인 MP2 50% 대역폭으로 CD수준의 음질을 보장한다. 60Kbps에서 FM금의 음질을 보장한다. 데이터가 유실되었을 새로 리셋되는 Random Access Time 0.05초이다. 지상파 DMB 오디오 규격으로는 최대 비트율은 스테레오인 경우 128Kbps이다. 보통 96Kbps 에서 CD 음질을 내고 60Kbps 에서 FM 음질을 낸다. H.264/AVC 에서 384Kbps 비디오에 스테레오 32~96Kbps 까지 다양하게 적용가능하다.

비트조각 산술코딩방식은 맨먼저 MSV(Most Significant Vector) 골격을 읽어 들이고 다음으로 2ndSV 읽어 들이므로서 1Kbps 단위의 비트조각단위로 비트율의 조절이 가능하다. 보통 채널당 8Kbps 단위로 조절한다. 비색은 AAC보다는 100 : 95 정도로 압축율 면에서 성능 향상을 보인다
.

1) BSAC 기술
플레이 도중 정교하게 비트율을 조절할 있는 Fine Grain Scalability (FGS)기능을 제공.
-Scalable layer :
채널당
1Kbps
-Large Step Scalable layer :
채널당
8Kbps
-
데이터의 중요도에 따른 처리


2) SBR 특징
1/2 대역폭을 복제하는 도구인 SBR(Spectral Band Replication) 대역폭이 제한된 오디오신호의 오디오 대역폭을 복제하여 원신호를 확장 재생한다. Coding Technologies사에 의해서 개발된 SBR 알고리즘은 mp3+SBR=mp3PRO 라고 불리이고 AAC+SBR=aacPlus라고 불리운다. 가끔 AAC mp3Plus 라고도 한다. aacPlus AAC CD 음질을 제공하는 96Kbps에서 AAC 비교해서 음질개선효과는 거의 없지만 AAC 음질이 저하되는 64Kbps 이하에서 우수한 음질을 제공하는 장점을 가진다.

 

3) 오디오 코덱 특허료 비교 (스테레오 2채널당)
1. MPEG-4 BSAC : 0.6$
2. MPEG-4 AAC LC : 1.0$
3. MPEG-4 aacPlus : 1.3$
4. MPEG-1 MUSICAM :
무료



이어지는 내용

by zoka6864 | 2008/07/18 17:35 | T-DMB | 트랙백 | 덧글(0)

About Eureka 147

 

2. Eureka-147  기술

 

1. 지상파 DAB 기술 --- 유레카-147 기본 구조
-
전송방식
------------>COFDM
-
변조방식
------------>π/4 DQPSK
-
기본 한글문자----->완성형 또는 유니코드

-
오류정정 코드----->R=1/2, Rate Compatible Punctured Convolutional Code,

(입력k=1,  출력n=4, 구속장길이K=7)
-
오디오 서비스----->MUSICAM 방식(Stream Mode, CD(192) 음질
)
-
데이터 서비스
----->PAD, NPAD (Stream Mode,Packet Mode, MOT, IP Tunneling)
-
비디오 서비스----->멀티미디어 서비스
(Stream Mode)

2.
지상파 DMB 기술 --- 멀티미디어 서비스
(Stream Mode)
-
비디오방송--------->MPEG-4 AVC [H.264] VCD
(384)
-
오디오방송--------->MPEG-4 ER-BSAC FM(60) or CD
(96)
-
데이터방송
--------->MPEG-4 System Core2D [OD-BIFS]
-
다중화기법--------->MPEG-4 SL(적용
) + MPEG-2 TS(Delivery)
-
추가채널부호
------>Reed-Solomon Code(204,188, t=8)

0 Eureka-147 특징

1. 단일 주파수망(Single Frequent Network : SFN) 구현으로 난청지역 해소 가능

2. 강력한 이동(150Km 이상) 휴대 수신 가능

3. 유연한 서비스 (비디오, 오디오, 데이터) , 다중화 기능 제공

4. 아날로그 대비 1/10 저출력으로 동일한 커버리지 송출가능(1Kw)

5. 국가재난방송(EWS) , 교통정보(TMC) , 무선호출(Paging) 데이터 서비스 가능

6. 멀티패스에 강하여 이동중에도 수신품질이 우수하다

 

0 Eureka-147 전송방식 (COFDM)
Eureka-147 전송방식으로 COFDM(Coded Orthogonal Frequency Division Multiplexing:부호화 직교 주파수 분할 다중화)방식을 사용한다. C Coded 부호화를 의미한다. DAB에서는 부호율(코딩율) R=1/2 Convolutional Coding 사용한다. DMB Reed-Solomon Coding(204 188 t=8) 추가하여 사용한다. 직교(Orthogonal) 하나의 스펙트럼이 최대 진폭 이웃 스펙트럼이 진폭의 크기가 0이되는 직교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서로중첩하면 상호 채널간 내지 반송파간 간섭(Inter Channel or Carrier Interference) 없애 준다. FDM 주파수를 여러개로 분할하여 다중화 시키는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TV 채널 12번에 3개의 DMB 채널이 있는데 그중 DMB채널 17번인 중심주파수 207.008MHz에서 1KHz 단위로 1536개의 부반송파로 분할한다. 분할하는 이유는 여러개의 부반송파를 만들고 부반송파 사이에 1/4길이 정도의 보호밴드(Guard Interval) 만들어 심볼간 혼신(Inter Symbol Interference) 없애고 다중경로(지연파) 영향을 받지 않고 단일주파수망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잡음 없이 깨끗한 음질을 보장한다..

 

0 Eureka-147 변조방식 (π/4-Shift DQPSK)

π/4 DQPSK(Differential Quadrature Phase Shift Keying)  데이터 전송시 위상을 45도씩 이동하여 전송하며 이전 값을 기준으로 신호가 같으면 같은 위상을 신호가 다르면 위상을 바꾸는(Differential) 방식이다. , 01 두비트로 4가지(Quadrature) 값을 가지는 45(0,0) 135(1,0) 225(1,1) 315(0,1) Gray Code 전송하여 오류검출을 용이하게 한다. 아날로그 데이터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디지털 변조방식이며 1Hz 2bit 전송한다.

 

0 기본한글문자----->완성형 또는 유니코드

데이터 서비스에 사용하는 한글은 완성형 또는 2Byte 모든나라의 문자를 표현 있는 유니코드를 사용한다.

 

0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게 Eureka-147 전송모드 1경우 지상파 단일망(Single Frequency Network)구성에 유리하며 주파수 범위는 375MHz이하이고 전송거리는 96Km 이다. 따라서 전국을 5개권역으로 나눠 권역망(MFN) 내지 단일망(SFN) 구성이 용이하다. 주요특징으로는 군집오류(Burst Error) 예방하기 위해 주서비스채널(MSC) 16프레임에 걸쳐 시간인터리빙을 걸고 MSC FIC 대역 전체에 걸쳐 주파수 인터리빙을 건다. 또한 보호구간에 따라 이동 수신중에도 모드1에서 가장 뛰어난 수신품질을 제공한다. 프레임길이는 96ms이며 프레임당 심볼은 76(SC1+FIC3+MSC72), Symbol 1.246ms (2552*T=1.2460937ms)이고 유효 Symbol 1ms (2048*T), Guard Interval 0.246ms (504*T= 0.2460937ms)이다. 프레임마다 하나씩 존재하는 Null symbol 1.297ms (2656*T= 1.296875ms)이다. 서브캐리어수는 1,536개이고 서브캐리어 간격은 1KHz이고 대역폭은 1.536MHz이다. 기준시간 T 나타내는 샘플링 주파수 Fs 2048MHz 이다. T=(1/2048000)sec 이다. 총비트율는 2.432Mbps = (SC*1+FIC*3+MSC*72)* 2bit*1536/96ms = (3072 + 9216 + 221184)/ 96ms 이다.

 

 

·                       3. Eureka-147 의 전송 모드에 따른 파라미터

전송모드 항목

Service

지상파 (SFN)

지상파 (MFN)

케이블

지상/위성 혼합

주파수 범위

< 375 MHz

< 1.5 GHz

< 3 GHz

< 1.5 GHz

사용 가능한 주파수 범위

174~216

1.452~1.467.5

< 3 GHz

지상1452~1467.5

위성1467.5~1492

Subcarrier Number

1,536

384

192

768

Subcarrier Spacing

1 KHz

4 KHz

8 KHz

2 KHz

유효 Symbol

1 ms

250 μs

125 μs

500 μs

Guard Interval

246 μs

62 μs

31 μs

123 μs

Symbol(유효+Guard)

1.246 ms

312 μs

156 μs

623 μs

Null Symbol 길이/Frame

1.297 ms

324 μs

168 μs

648 μs

전송반경

96 Km(단일망)

24 Km(권역망)

12 Km(도시망)

48 Km(혼합T/S)

Frame 길이

96 ms

24 ms

24 ms

48 ms

Frame 당 심볼수

76 (1+3+72)

76 (1+3+72)

153 (1+8+144)

76 (1+3+72)

변조방식

π/4 DQPSK (1Hz당 2bit 전송)

전송방식(다중화)

COFDM (MPEG-2 TS + MPEG-4 SL)

채널코딩(MSC 오디오)

평균 부호율 R=1/2 = (1.152Mbps) Convolution Code (k=1 n=4 K=7)

채널코딩(MSC 비디오)

평균 부호율 R=1/2 + Reed-Solomon Code 추가 = 1.027Mbps

채널코딩(FIC 데이터)

평균 부호율 R=1/3 = (32Kbps)

샘플링 주파수

2.048 MHz,  기준시간T=1/F=1/2,048,000second

시간 인터리빙

Depth = 384 ms (16Frame*24ms, MSC에만 적용)

주파수 인터리빙

Width = 1.536 MHz (전대역에 걸쳐 MSC + FIC에 적용)

시스템 대역폭

1.536 MHz

총 데이터율

2.400 Mbps (전송모드1) = [75symbol *2bit*1536/96ms]

2.400 Mbps (전송모드2) = [75symbol *2bit* 384/24ms]

2.432 Mbps (전송모드3) = [152symbol*2bit* 192/24ms]

2.400 Mbps (전송모드4) = [75symbol *2bit* 768/48ms]

유효 데이터율(UEP)

0.8 Mbps (R=1/3) ~1.8 Mbps (R=3/4) : Short Form

유효 데이터율(EEP)

0.6 Mbps (R=1/4) ~1.8 Mbps (R=3/4) : Long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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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ka6864 | 2008/07/15 17:01 | T-DMB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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